STATEMENT / 이영은

남겨진 것에서 사라진 것을 발견하는 회화 작업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간 그 사람은 집에 가서 무엇을 할까. 어떤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떤 생각으로 휴식을 취할까. 하루를 되뇌며 감상에 젖어있을까. 좀 더 빨리 들어오지 못한 것에 짜증을 내며 추레한 옷차림으로 쭈그려 앉아 드라마를 볼까.

그 사람은 지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와 열쇠로 문을 열고, 아끼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반갑게 맞이하는 가족들에게 의례적으로 인사하며 방으로 직행한다. 이어서, 색깔도 맞지 않는 티셔츠와 바지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는 거울을 한 번 보면서 ‘남들은 집에서 내가 이러고 있는걸 상상도 못 할거야’ 라고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 늘어난 티셔츠를 벗고 결혼식에 가기 위해 옷장을 뒤적인다.


위의 글에서 타인처럼 지칭한 ‘그 사람’은 타인에 의해 관찰된 ‘나’일수도 있다. ‘나’ 또한 모두의 타인이며 ‘타인’은 모두 각각의 나이다. 우리는 사적인 공간에서만 지낼 수는 없기에 외부와 소통하기 위한 모습을 만들어간다. 공간과 환경은 하나의 매뉴얼이 되어 ‘나’를 다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최소한의 자아를 지키면서도 공개해도 괜찮을 만한 어떠한 ‘표시’를 한다. 그 표시는 누군가 에게는 내면의 단서를 제공하기도하고, 나를 방어해주기도하며, 행동을 규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경계로 하여 외부로 표시한 한정적인 모습만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다. 모든 타인은 각각 한 명의 ‘나’로 이 세계를 살아가며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독립된 사생활과 사유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거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들으면 흐릿하게나마 그의 존재가 나와 같음을 인지하게 된다.


공공의 장소에서 발견하는 낯선 사람들 틈에서 타인의 존재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다. 시야에서 벗어난 세계는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며 동시에 그 안을 맴돌던 사람들의 존재가 더욱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기분은 친밀한 관계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순간에도 불현듯 찾아오곤 한다. 상대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매 순간 내리꽂는 시선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지 짐작은 하지만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끼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이러한 사유로 인해 내면과 외면의 매개물의 역할로 ‘사물’이 화면에 등장했으며 옷이나 소품 등의 사물을 통해 ‘사물 너머의 존재’를 이야기 하기로 했다. 어떤 공간 안에 남겨진 사물(또는 흔적)은 물질적 특성을 넘어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그림에서 사물은 누군가의 정보나 시간을 담고 있는 ‘흔적’으로 나타나고 보고 있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하는 매개물이 된다. 횡단보도에 떨어져 있는 장갑 한 짝, 그것은 어떤 사람이 그 자리를 지나가고 있던 상황을 담고 있는 증거이자 취향과 성격 그 이상을 상상하게 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주체가 사라진 사물의 단서는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보여지는 것들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사회적, 역사적, 주관적 정보들을 분석하여 주체를 상상하고 판단하는 것뿐이다. 공공의 장소나 사람의 시야에서 머물고 떠나간 자리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시선에 사라진 주체로, 남겨진 흔적으로 다시 머물게 된다.


결국 흔적은 ‘누군가의 자화상’이다. 몸이 빠져나간 듯한 옷 더미의 이미지는 사람을 그리지 않았지만 사람을 이야기 하고 있다. 화면 속에서 몸이 부재한 군복더미, 양복더미 등은 오히려 부재한 몸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사회적 위치 너머의 개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는 것 너머에도 존재하는 삶이 있음을 지극히 시각적인 사물의 표피를 통해 더욱 깊게 생각하게 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사물과 공간, 시간 속의 존재에 대해 회화적으로 풀어내어 드러낸 화면 앞에서 감상자는 자신의 모습, 또는 경험을 투영시키며 작품 속 ‘사라진 몸'의 주인공이 된다.


타인과의 삶, 타인의 삶


출근길, 또 퇴근길. 오늘 내가 오고 가는 길에는 그 길을 공유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밟은 계단을 누군가가 뒤이어 밟고 올라오고 버스를 기다리던 내 옆에 누군가 와서 함께 기다리고 버스가 오면 그 사람은 홀로 남아 또 누군가와 그 자리를 공유하고…... 우리는 상당히 규칙적으로, 많은 시간을 낯선 누군가와 공존한다. 말 한번 섞지 않고 그저 몇 번의 눈길을 보내며 짧게는 몇 초, 길게는 한 두 시간의 순간을 타인들과 함께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낯선 공존의 시간에서 작가는 타인의 존재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던 그 사람이 내 시야에서 벗어난 순간 흐릿해져 사라질 것만 같다. 소멸이나 실종이 아니다. 내 눈과 내 공간에서 벗어난 세계는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며 동시에 그 안을 맴돌던 사람들의 존재가 더욱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기분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던 순간에도 불현듯 찾아오곤 한다. 상대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매 순간 내리꽂는 시선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지 짐작은 하지만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끼는 것과 같이 타인에게 동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몸을 경계로 하여 외부로 표시한 것들만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타인은 각각 한 명의 ‘나’로써 이 세계를 살아간다. ‘나’ 또한 모두의 타인이며 ‘타인’은 모두 각각의 나이다.


누군가의 몸이 담겨있던 옷가지들, 항상 지나는 그 길에 옷 더미가 흩어져있는 상황들, 스타킹의 반복적 출연은 어느새 그것이 단순히 스타킹이 아닌 어떤 대상물, 혹은 피부로 느껴지게 한다. 사람의 껍데기 같아 보이는 옷가지들은 이내 몸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의문을 만들어내고 껍질로 여겨지던 천 조각들은 그것들이 몸인 듯 계속해서 흔적처럼, 실제처럼 남겨지고 내가 지나온 길에 생긴 누군가의 흔적, 내가 남기고 간 어떤 흔적, 어떤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많은 표면적 단서들은 타인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는 작은 통로가 된다.